☐ 예배로의 부름
❍ 초청
오너라, 우리가 엎드려 경배하자. 우리를 지으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자.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가 손수 이끄시는 양 떼다.
오늘,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들어 보아라. (시 95:6-7, 새번역)
❍ 환영
(인도자)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회중) 당신과도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시편 낭독
[시편 81:1-10, 새번역]
1 우리의 피난처이신 하나님께 즐거이 노래를 불러라. 야곱의 하나님께 큰 환성을 올려라.
2 시를 읊으면서 소구를 두드려라. 수금을 타면서, 즐거운 가락으로 거문고를 타라.
3 새 달과 대보름날에, 우리의 축제날에, 나팔을 불어라.
4 이것은 이스라엘이 지킬 율례요, 야곱의 하나님이 주신 규례이며,
5 하나님이 이집트 땅을 치려고 나가실 때에, 요셉에게 내리신 훈령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던 한 소리를 들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6 "내가 네 어깨에서 짐을 벗겨 주고, 네 손에서 무거운 광주리를 내려놓게 하였다.
7 너희가 고난 가운데 부르짖을 때에, 내가 건져 주고, 천둥치는 먹구름 속에서 내가 대답하고, 므리바 물 가에서는 내가 너를 시험하기도 하였다. (셀라)
8 내 백성아, 들어라. 내가 너에게 경고하겠다. 이스라엘아, 나는 네가 내 말을 듣기를 바란다.
9 '너희 가운데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아라.
10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너희의 입을 크게 벌려라. 내가 마음껏 먹여 주겠다' 하였으나
❏ 죄의 고백
❍ 침묵 기도
❍ 찬송

❍ 참회의 기도
(중보자)
“사람은 숨 한 번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니, 그가 세운 모든 계획이 바로 그날로 다 사라지고 만다.” (시편 146:4)
바닷가 사람들에게는 금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금기는 밥상에서 생선을 절대로 뒤집지 않습니다. ‘배가 뒤집힌다’라는 속설 때문입니다. 바닷가 사람들에게 바다는 생명인 동시에 죽음이기도 합니다.
별다른 장비의 도움 없이 오롯이 자신의 숨에 의지하는 해녀들은 늘 생명과 죽음의 경계에서 참은 숨만큼의 보상으로 살아갑니다. 해녀들에게 ‘물숨’이라는 단어는 절대 입에 담지 않는 금기어입니다. 정해진 숨보다 더 많은 욕심을 내는 순간 바다가 죽음으로 뒤바뀌는 때의 숨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해녀들은 참는 숨의 길이대로 갈 수 있는 바다가 정해집니다. 전복이 있는 먼바다는 숨이 긴 상군해녀들만 갈 수 있습니다. 해녀들 숨의 길이는 날 때부터 정해집니다. 바로 주어진 숨의 길이에 순응하는 것이 바다를 대하는 첫 번째 금기입니다. 받은 숨대로 순종하면 바다는 늘 ‘값없는 은총’을 베풉니다. 제아무리 숨이 차도 해녀들은 결코 산소통을 메지 않습니다. 오늘만큼 내일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쁜 숨으로 오랜 세월 대물림해 온 은총의 바다가 죽음의 바다로 오염되고 있습니다. 값이 없다고 내 것인 줄 아는 욕심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착각을 거두고 ‘물숨’ 되어 가는 바다를 다시 생명의 바다로 돌려야 합니다.
“태초에 받은 숨대로, 평안하냐 물으신 그날에 주신 숨대로 살기 원하는 하나님! 우리의 숨이 생명의 바다를 지키는 데 사용되게 하소서”
- 윤태현 목사(제주한울교회)
❍ 화답
(회중)
주님,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나의 신음 소리를 들어주십시오. 나의 탄식 소리를 귀 담아 들어 주십시오. 나의 임금님,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시 5:1-2, 새번역)
❍ 사죄 선언
저마다 지은 죄 감당하기에 너무 어려울 때에,
오직 주님만이 그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시편 65:3, 새번역)
❏ 들음
[요한일서 3:18, 새번역]
18 자녀 된 이 여러분,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설교문> “행함과 진실함으로, 녹색의 희망을!” 최광선 목사 (순천덕신교회)
1. 지옥의 문을 열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다!"라고 경탄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파괴하고, 멸종에 이르게 하는 끔찍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전 세계적으로 멸종이 급증하여, 지금은 생명다양성이 파괴되는 대멸종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유엔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흐스(Antnio Gu-terres)는 2022년 기후정상회의에서 "지구 온도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 행성 지구는 기후재앙을 돌이킬 수 없는 티핑 포인트(균형을 깨뜨리는 극적인 변화의 시작점)를 향해 빠르게 다가가고 있다"라고 경고하며, "우리는 기후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2023년 기후정상회의에서 그는 한 톤 더 높여 "인류가 지옥의 문을 열었다"며 우리가 "위험하고 불안정한 세상"을 향하고 있다고 준엄하게 경고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징표를 분별하는 가장 날 선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센세니나(Senzenina), “우리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라는 뜻을 지닌 아프리카의 노래 제목입니다. 기후 지옥의 문 앞에서 우리는 "센세니나"를 되뇝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표현할 적당한 말은 "우리 모두가 환각 상태에 빠져 있다"입니다. 탐욕을 부추기는 상업자본의 환상이 제공하는 장밋빛에 시력을 잃고, 눈부신 풍요를 향한 과도한 욕망이 인류사회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눈이 멀고 귀를 닫은 인류는 더 발전하면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환각 상태 또는 집단적 광기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예외는 아닙니다. 무질서한 애착과 탐욕에 따라 눈먼 우리들이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생명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탐욕을 극대화시키는 경제, 정치, 종교, 대학 시스템을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누릴 경제적 번영이 곧 진보라는 신화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무참하게 파괴하면서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2. 강도 만난 자의 이웃
우리가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며, 생태적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환각상태에서 깨어나, 신음하는 피조물과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요한 사도가 말한 "말과 혀가 아닌 행함과 진실함(요일 3:18)"에서 생태적 희망을 발견합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초대하는 예수님의 비유 한 자락을 들어보십시오.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 되묻는 예수님께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네 대답이 옳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율법교사는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고 되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비유 하나를 들려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에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는 강도들에게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맞아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마침 그 길을 지나가던 제사장이 그를 보았지만 그냥 지나갔습니다. 레위인도 그를 보고 지나쳤습니다. 얼마 후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에게 달려가 상처를 치료하였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나귀에 태워 주막에 들러 보살펴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대화와 비유 말씀을 통해 선택과 행동을 요청받습니다. 강도를 만나 신음하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가시겠습니까? 아니면 가서 이웃이 되어 주겠습니까?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자를 보았으면서, 왜 그를 치료하지 않고 지나갔을까요? 그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율법을 지키면서 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다친 사람을 돕다가 죽기라도 한다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었기에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질문을 했던 율법교사도 비슷한 입장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라고 묻고, 율법교사는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응답합니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간호를 해주며 행동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교사에게 말씀하셨듯이, 오늘 여러분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고 말씀합니다.
3. 신음하는 피조물의 이웃되기
우리 시대의 강도 만난 자는 누구입니까? 강도 만난 자처럼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방어력도 없이 죽게 된 이들은 누구입니까? 이 질문에 올바르게 응답하기 위해서, 우리도 이웃의 개념을 모든 피조물로 확장시켜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강도 만난 자의 진정한 이웃은 사마리아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웃의 울타리를 인간종을 뛰어넘어 모든 피조물로 확장시킬 때 생태적 희망이 있습니다.
피조물을 이웃으로 대할 수 있는 성경의 가르침과 전통을 찾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매 창조의 순간마다 보시고 "좋다"라고 하셨습니다. 노아 언약은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서 주체적인 언약 당사자임을 보여줍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친밀함으로 메시아 시대를 예언합니다. 시편기자는 피조세계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공동체(시 24, 104, 148)임을 노래합니다.
요한에게 만물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광야로 가셨을 때 사탄의 유혹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막 1:13)"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관계를 발전시킨 성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만,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는 성 제롬이 사자의 발에서 가시를 제거한 이야기와 성 프란시스가 늑대와 친구가 된 이야기입니다. 두 이야기는 신앙에서 "이웃의 범위"가 점점 더 넓은 "타자"로 확장되고, 마침내 다른 종(species)을 포함하여 만물의 일치까지 이름을 보여줍니다. (...)
성경과 전통에서 피조물은 단순히 물질이 아닌 우리의 이웃임을 보여줍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존재하는 만물을 부모, 형제, 벗이라는 동양의 가르침은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바울은 좀 더 나아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롬 1:20)"라고 증언합니다. 이런 가르침에 따를 때, 우리 시대의 강도 만난 이웃은 신음하는 피조물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이웃은 파괴되는 산림, 독성 물질로 오염되는 바다, 멸종을 눈앞에 두고 있는 많은 생명종, 주거지 파괴로 인해 난민의 길을 떠나는 기후 난민들입니다. 피조세계를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 당사자를 살해하는 신성모독이요, 우리의 이웃과 형제자매를 괴롭히며 죽이는 자해적 행위입니다.
4. 피조물의 이웃이 되어준 이들
신음하는 피조물을 보고 그냥 지나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이웃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예수님의 물음 앞에 진지하게 따르고자 하는 이들은 행함으로 생태적 희망의 길을 걷습니다. 말과 혀가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을 실천합니다.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는 나무를 심는 일이요, 둘째는 변화를 요구하는 행동입니다. <은총의 숲>과 그레타 툰베리는 우리가 실천할 모습을 보여줍니다.
첫째,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와 한국교회환경연구소에서는 지난 2008년부터 창조세계의 온전성을 회복하기 위해 한국교회가 몽골사막 한가운데 직접 삼림을 조성하는 <은총의 숲>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은총의 숲에는 비술나무, 포플러, 짝드, 사와, 비타민 나무 등 현지 기후와 토양에 적합한 25,000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아울러 양묘장, 관리동, 울타리, 관정 등의 기반시설과 최근 건립한 생태교육센터를 통해 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에게 은총의 숲을 기반으로 임농업교육과 기후생태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15년간 조성된 몽골 은총의 숲은 생태 임농업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는 것과 동시에 생태환경 교육의 공간으로써, 한국교회가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창조세계를 회복하는 녹색선교의 모범 사례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둘째, 생태적 희망은 행동에 있습니다. 그레타 툰베리는 스웨덴에서 학교파업을 이끌었고,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기후위기에 저항하여 행동하는 활동가입니다. 툰베리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Future)" 운동을 시작했고,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기후변화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하도록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툰베리와 함께 전 세계 수천 명의 젊은 청년들이 미래를 걱정하며 전 지구적 기후위기 문제에 신속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Z세대들은 기후위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자신들의 미래가 지구와 연결되어 있으며 지구를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미래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툰베리는 2018년 12월 COP24 연설에서 "저는 2078년에 75세가 됩니다. 만약 내게 자녀가 있다면, 그들은 나와 함께 하루를 보내며 당신에게 아직 행동할 시간이 있었는데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 물어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자녀의 미래를 빼앗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는 사도의 외침과 같습니다.
5. 결단: 행함과 진실함으로!
구상 시인은 노년에 "두 이레 강아지만큼 은총에 눈을 뜬다"하면서 눈 뜨니 세상은 은총으로 가득하고, 모든 것이 새롭고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창조의 경이로움을 노래합니다. 그 경이로운 세상을 우리도 눈 뜨고 볼 수 있을까요? 그 경이로운 세상을 눈 뜨고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신음하는 피조물의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인처럼, 은총의 숲처럼, 그리고 툰베리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열린 기후지옥의 문을 닫고, 하나님이 보시기 "심히 아름다운" 지구공동체를 돌보는 일에 생태적 헌신을 해야 합니다. 시인 오스카 햄머스타인은 "사랑은"에서 말과 혀가 아닌 행함과 진실함의 사랑을 종과 노래에 비유하여 읊습니다.
종은 누가 그걸 울리기 전에는 종이 아니다. 노래는 누가 그걸 부르기 전에는 노래가 아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도 한쪽으로 치워 놓아선 안 된다. 사랑은 주기 전에는 사랑이 아니니까.
종은 울리기 전에는 단지 쇠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종소리를 낼 때 종으로 존재합니다. 아름다운 노래도 묻혀 있다면 노래가 될 수 없습니다. 노래는 부르고 연주할 때 음악이 됩니다. 당신의 마음 속에 피조세계에 대한 아무리 큰 사랑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사랑은 말과 혀가 아닌 당신의 진실한 손과 발 그리고 온몸으로 나무를 심고, 생태적 전환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생태위기 시대를 함께 걷는 그리스도인 여러분, 행함과 진실함으로 생태적 희망이 되십시오.
❏ 사귐
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서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모두 돌려가며 이 잔을 마셔라.
이것은 죄를 사하여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마 26:26-28, 새번역)
❍ 공동식사

❍ 찬송

❍ 공동기도
(인도자) 주님, 저를 당신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회중)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주게 하소서.
(인도자) 오, 거룩하신 주인님, 저로 하여금
위로받으려 하기보다 위로하게 하시고
이해받으려 하기보다 이해하게 하시며
사랑받으려 하기보다 사랑하게 하소서.
(회중) 주어서 받고, 용서해서 용서받고,
스스로 죽어서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 공동축도
(인도자)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회중)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고후 13:12-13, 새번역)
❏ 보냄
예배가 마쳤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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