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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순서지👏👏👏

260510_주일예배

☐ 예배로의 부름

  ❍ 초청 

오너라, 우리가 엎드려 경배하자. 우리를 지으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자.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가 손수 이끄시는 양 떼다. 
오늘,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들어 보아라. (시 95:6-7, 새번역)

 
 

  ❍ 환영

(인도자)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회중) 당신과도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성서 낭독

[시편 66:8-20, 새번역] 
8 백성아, 우리의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을 찬양하는 노랫소리, 크게 울려 퍼지게 하여라.
9 우리의 생명을 붙들어 주셔서, 우리가 실족하여 넘어지지 않게 살펴 주신다.
10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셔서, 은을 달구어 정련하듯 우리를 연단하셨습니다.
11 우리를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우리의 등에 무거운 짐을 지우시고,
12 사람들을 시켜서 우리의 머리를 짓밟게 하시니, 우리가 불 속으로, 우리가 물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마침내 건지셔서, 모든 것이 풍족한 곳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13 내가 번제를 드리러 주님의 집으로 왔습니다. 이제 내가 주님께 서원제를 드립니다.
14 이 서원은, 내가 고난받고 있을 때에, 이 입술을 열어서, 이 입으로 주님께 아뢴 것입니다.
15 내가 숫양의 향기와 함께 살진 번제물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옵니다. 숫염소와 함께 수소를 드립니다. (셀라)
16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아, 오너라. 그가 나에게 하신 일을 증언할 터이니, 다 와서 들어라.
17 나는 주님께 도와 달라고 내 입으로 부르짖었다. 내 혀로 주님을 찬양하였다.
18 내가 마음 속으로 악한 생각을 품었더라면,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19 그러나 하나님은 나에게 응답하여 주시고, 나의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셨다.
20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한결같은 사랑을 나에게서 거두지 않으신 하나님, 찬양받으십시오.

❏ 죄의 고백

  ❍ 침묵 기도


 
  ❍ 찬송 


 

  ❍ 참회의 기도

(중보자) 
주님, 당신이 자비와 은총으로 힘을 주시지 않으면, 이 슬픈 인생을 제가 어찌 견디겠습니까? 당신 얼굴을 저에게서 돌리지 마소서. 제 영혼이 물 없는 사막처럼 되지 않도록 당신의 위안을 저한테서 거두지 마십시오. 오, 주님. 당신 뜻을 이루면서 겸손하게 사는 길을 저에게 가르쳐주십시오. 당신 홀로 저를 옹글게 하시고, 제 영혼을 속속들이 들여다보십니다. 당신만이 저에게 한결같은 평화와 기쁨을 주실 수 있습니다. 

 
 

  ❍ 화답

(회중) 
주님,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나의 신음 소리를 들어주십시오. 나의 탄식 소리를 귀 담아 들어 주십시오. 나의 임금님,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시 5:1-2, 새번역)

 
 

  ❍ 사죄 선언

저마다 지은 죄 감당하기에 너무 어려울 때에, 
오직 주님만이 그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시편 65:3, 새번역)

 
 


❏ 들음

[함께 읽을거리 - 복음과상황 '26년 5월호] 

홍성에서 다시 공동체를 묻다 - '더불어 사는 평민' 풀무학교의 느리고도 질긴 순환

박종운 | [426호 무브먼트 투게더: 공동체 탐방]


(...) 어릴 때 우리 가족이 살던 마을에도 개신교 교회가 있었다. 나의 고향 교회다. 원래 일본인이 운영하던 사찰이라 일본식으로 지어져 본당과 살림집이 붙어있었다. 해방 이후 일본인들이 귀국하자, 그곳에서 예배가 시작되었다. 거주할 곳이 없었던 우리 가족은 예배당에 붙은 살림집에서 살게 되었다. 예배당 안팎을 청소하고, 줄 맞추어 방석을 깔고, 예배 준비물을 갖추고, 나무 위에 걸린 쇠 종을 울리는 것은 우리 가족, 특히 집사로 섬기셨던 아버지와 큰아들인 내가 주로 맡은 일이었다


(...) 그중 공동체를 생각할 때마다 항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하나 있다.
아마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 같다. 예배당은 야학 교실로 사용되었고, 조금이라도 더 배운 삼촌·이모들이 동년배 친구들과 동생들을 가르쳤다. 추운 날씨였는지 10여 명의 삼촌·이모들은 예배당 옆 살림집 작은방에 둘러앉았다. 온돌바닥은 왕겨와 나무 부스러기를 태워 뜨끈하게 데웠고, 방 안은 훈훈한 공기로 가득했다. 사방 벽에 등을 기대고 방 한가운데로 쭉 뻗은 다리 위에는 이불을 덮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화기애애하게 웃음꽃 이야기꽃을 피우는 광경, 그 가운데 아버지와 삼촌·이모들 사이에 어린 내가 있었다. 거기에 기쁨과 행복, 포근함과 안전감이 있었다.


(...) 깨어진 세상 속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반듯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공동체의 중요성이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지금, 돌봄과 생존 문제 또한 개인과 가족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신앙도, 일상도, 노년의 삶도, 결국 함께 살아낼 자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여러 기독교 신앙 공동체를 찾아가 어떤 정신으로 시작되었는지, 무엇을 이루었는지, 어떤 실패와 갈등을 통과해왔는지,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묻는지, 직접 보고 듣고 싶었다.

 

예수님의 마음, <성서조선>의 마음

첫걸음은 충남 홍성이었다. (...) 출발하는 날 새벽, 설레는 마음 안고 종로 5가 한국기독교회관에 준비된 미니버스에 올라탔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 오랜만에 조성돈 교수님을 뵈었고, 김철호 목사님과 김옥연 교수님 내외분 옆자리에 앉아 한국·일본·대만의 부채탕감 운동, 천안 단비교회, 한국교회의 앞날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동체를 찾아가는 길은 목적지에 닿은 뒤에야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 위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는 공동체를 방문하러 간 것이 아니라, 각자의 흩어진 삶을 잠시나마 연결해보려는 마음으로 길 위에 오른 것인지도 모른다.

드디어 풀무학교에 도착했다. 학교 건물 앞 커다란 바윗돌에는 “偉大(위대)한 平民(평민)"이라고 새겨져있었고, 배움터 '교훈' 액자에는 "더불어 사는 평민"이라고 적혀있었다. 갑자기 뭔가가 내 머리를 치면서,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무언가 울컥 올라왔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이리라. 기둥에 걸린 액자에는 김교신 선생님의 1927년 <성서조선> 창간사 일부가 붓글씨로 기록되어 있었다.

“<성서조선>아, 너는 소위 기독신자보다도 조선혼을 가진 조선 사람에게 가라 시골로 가라 산촌으로 가라 거기에 나뭇군 한사람을 위로함으로 너의 사명을 삼으라..." 아, 예수님의 마음, 조선의 마음, <성서조선>의 마음, 풀무학교는 그 마음을 품고 있었던가?


풀무학교 박완 이사장님 강의를 들으면서, 여러 소품이 있는 공간과 도서관을 지나면서 많은 생각이 오갔다. 대안학교를 포함한 기독교 사학들은 '기독교 인재'를 양성하려 한다던데, 과연 누가 기독교 인재인가? 장래에 권력을 움켜쥘 가능성이 있는 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자? 명예를 드높일 자? 이 세상 가치관에 맞게 성공, 출세,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갈 수 있는 자를 인재라 한다면, 그것이 예수님 정신에 맞는지, 하나님 나라 가치관에 부합하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어서 홍동밝맑도서관을 중심으로 홍동마을을 둘러보았다.
오누이마을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 장곡마을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 워케이션 센터(지역 농촌 마을의 자연환경과 문화자원을 활용한 '놀·일·터') 등도 방문했다. 마지막에는 오누이다목적회관에서 정민철 선생님에게 장곡마을을 중심으로 한 풀무 이야기를 강의로 들었다. 일정표만 보면 그저 학교-도서관-식당-농장-마을을 차례로 둘러본 하루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로 내게 다가온 것은 학교가 사람을 길러내고, 그들이 다시 마을을 일구고, 그 마을이 또 다른 사람을 품어내는, 느리고도 질긴 순환이었다. 그날 우리 일행을 마을로 안내하고 그동안의 경과를 설명해주고 강의 후 질의응답 시간에 응해준 분들은 풀무학교 선생님 혹은 학생 출신이었다.

 

마을 공동체 속으로 걸어 들어간 풀무학교

풀무학교는 '(기독교) 농업기술학교'로 소개되지만, 그 말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단순히 농업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라기보다, 지속가능한 농업과 농촌을 이끌 사람을 길러내고, 지역사회와 협력해 협동조합과 주민 학습, 생활 문화 개선, 유기농업 실천을 함께 이루어온 거점이었다. 홍성군 홍동면의 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1958년 풀무학교 개교가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이유도 거기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학교 밑바탕에 기독교, 그중에서도 김교신 선생님의 무교회주의 신앙 전통이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개교 초기 풀무학교는 무형의 '진리 공동체'를 지향했다. 물론 그 이상이 처음부터 지역사회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동안은 긴장 관계에 놓여 고립된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60년대 신용협동조합 운동, 1970년대 유기농업 실천 등을 거쳐 점차 마을 안으로 들어갔고, 마을은 다시 학교를 품었다. 내게는 이 대목이 몹시 중요하게 다가왔다. 좋은 공동체란 흠 없는 이상향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오해와 고립과 시행착오를 지나면서 비로소 우리 삶 속에 움터 오르는 게 아닐까.

홍동마을은 풀무학교가 있는 마을이 아니라 '풀무학교가 걸어 들어간 자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상징 같은 건물이 밝맑도서관으로 보였다. 풀무학교 개교 50주년을 계기로 건립된 이 도서관은 학교 안이 아닌 마을 한가운데 놓여있어, '학교와 지역은 하나다'라는 풀무학교의 중요한 정신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그래서 이 도서관은 단지 책을 꽂아두는 건물이 아니라, 강좌와 전시와 음악회, 토론과 모임이 열리는 마을의 공론장이자 사랑방, 문화 공간이 되었다. 조용했지만 비어있지 않았고, 소박했지만 빈약해 보이지 않았다. 사람의 기척과 체온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 읽고, 배우고, 말을 건네고, 머물다가 간 자리. 공동체는 거창한 선언으로 시작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런 공간을 통해 조금씩 형성되지 않을까? 신앙도 결국 교회 공간 안에서만 자라지 않고, 도서관과 밥상과 농장과 회의와 노동과 휴식의 자리를 지나면서 삶으로 구현될 테니 말이다.

홍동마을은 우리나라 최초로 오리농법이 시행된 친환경 농업의 메카로도 알려져있다. 이 지역 유기농업은 197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되었고, 농약과 화학비료에 대한 우려, 생명과 건강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중요한 점은 몇몇 개인의 결심으로 그치지 않고 학교와 주민 조직, 협동조합과 지역 네트워크가 함께 움직이면서 삶의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이다. 홍동은 단지 유기농을 하는 마을이 아니라, 생명과 자립과 협동을 마을 전체의 생활, 문화 속에 구현하려고 애써온 곳이라 보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 홍동마을은 2015년에 홍성우리마을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통해 우리동네의원이 개원할 정도로 발전을 거듭했고, 공동체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에 비해 장곡마을은 비교적 덜 알려진 듯하지만, '청년들과 함께하는 유기농마을 오누이권역'으로 명명될 만큼 활동이 왕성하다. 오누이커뮤니티센터, 마을 공유부엌, 마을학교 등 다양한 형태로 활동이 이루어지며, 오누이다목적회관에는 20여 개의 크고 작은 단체 명단이 적혀있을 정도로 풀뿌리 공동체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쉽고 아름답게만 적혀서는 안 된다. 풀무학교와 홍동마을의 전개 과정에도 갈등과 긴장이 적지 않았다. 정규 고교화 추진 과정에서의 갈등, 생활협동조합의 위기, 정치 참여 논쟁 등이 있었다. 이곳의 진짜 힘은 갈등이 없었다는 데 있지 않다. 갈등과 실패를 겪고도 다시 작은 학교, 작은 마을, 자립과 협동의 삶이라는 초심으로 돌아가려 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좋은 공동체란 갈등과 상처가 없는 공동체가 아니라, 상처를 품고도 다시 뚜벅뚜벅 걸어가는 공동체인지 모른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한국교회를 떠올린다. 성령님의 역사 아래 사도들과 성도들이 일구어낸 초대교회는 원초적 공동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많은 교회가 공동체를 말하지만, 정작 많은 성도가 더 깊은 고립 가운데 살아간다. 함께 예배하지만 교회 속에서도 각자도생하고, 형제·자매를 말하지만 서로의 삶을 떠받치지는 못한다. 이럴 때일수록 성도들의 각성과 전 신자 제사장주의에 입각한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신앙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공동체 없이 방치된 자립 신앙은 변질되기 쉽고, 반대로 자립적 신앙 없는 공동체는 집단주의로 굳어져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 홀로 하나님'도, '맹목적인 우리'도 아닌, 나와 하나님, 그리고 우리와 하나님을 함께 붙드는 신실한 공동체일 것이다.

 

다시 공동체를 묻다

홍성에서의 하루는 정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더 제대로 묻게 만든 시간이었다. 공동체란 사람을 한데 묶어두는 틀이 아니라, 사람을 길러내고 서로 기대게 하며 삶의 방식을 조금씩 바꾸는 오랜 훈련일 수 있다. 학교와 도서관과 협동조합과 농장과 주민 모임이 한 호흡으로 이어질 때, 공동체는 생활의 얼굴, 삶의 문화를 갖게 된다. 그런 공동체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지 않고, 오랫동안 사람을 길러내고 관계를 쌓아온 세월의 씨줄과 날줄에서 자라난다는 것을 조금은 배웠다.

나는 여전히 묻고 싶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의뢰하는 삶은 오늘 한국 사회에서 어떤 공동체적 형태를 띠어야 하는가? 홍성에서의 하루가 완성된 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한가지는 분명했다. 답은 추상적 구호나 머릿속이 아닌, 사람들 사이, 마을의 시간 속, 함께 먹고 배우고 늙어가는 일상의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빗줄기가 굵어졌다. 창밖은 흐려졌고 풍경은 자꾸 번져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속에서는 어떤 윤곽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공동체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멀리서는 흐릿하고 막연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함께 비를 맞으면 사람의 얼굴로 드러나는 것. 홍성에서의 하루는 그런 장면으로 남았다. 공동체는 아직도 어딘가에서 그것을 찾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먼저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기를 배우려는 사람에게도 조금씩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박종운 사회선교사, 공증인가 법무법인 에셀, 하나님 앞에서 이웃과 더불어 사명의 길 가는 나그네로서 섬김과 나눔 가운데 사랑으로 살고픈 그리스도인 법률가.


❏ 사귐

❍ 찬송

 
 

❍ 기도

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서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모두 돌려가며 이 잔을 마셔라. 
이것은 죄를 사하여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마 26:26-28, 새번역)

 

 

❍ 공동식사

Frederick George Cotman, One of the Family(1880), by Google Cultural Institute

 

❍ 공동기도

(인도자) 주님, 저를 당신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회중)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주게 하소서. 
(인도자) 오, 거룩하신 주인님, 저로 하여금
위로받으려 하기보다 위로하게 하시고
이해받으려 하기보다 이해하게 하시며
사랑받으려 하기보다 사랑하게 하소서. 
(회중) 주어서 받고, 용서해서 용서받고,
스스로 죽어서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 공동축도

(인도자)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회중)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고후 13:12-13, 새번역)

 
 

 
 


❏ 보냄

예배가 마쳤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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