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로의 부름
❍ 초청
오너라, 우리가 엎드려 경배하자. 우리를 지으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자.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가 손수 이끄시는 양 떼다.
오늘,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들어 보아라. (시 95:6-7, 새번역)
❍ 환영
(인도자)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회중) 당신과도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성서 낭독
[시편 130:1-8, 새번역]
1 주님, 내가 깊은 물 속에서 주님을 불렀습니다.
2 주님, 내 소리를 들어 주십시오. 나의 애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3 주님, 주님께서 죄를 지켜 보고 계시면, 주님 앞에 누가 감히 맞설 수 있겠습니까?
4 용서는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므로, 우리가 주님만을 경외합니다.
5 내가 주님을 기다린다.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며 내가 주님의 말씀만을 바란다.
6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림이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간절하다. 진실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간절하다.
7 이스라엘아, 주님만을 의지하여라. 주님께만 인자하심이 있고, 속량하시는 큰 능력은 그에게만 있다.
8 오직, 주님만이 이스라엘을 모든 죄에서 속량하신다.
❏ 죄의 고백
❍ 침묵 기도
❍ 찬송

❍ 참회의 기도
(중보자)
주님, 당신이 자비와 은총으로 힘을 주시지 않으면, 이 슬픈 인생을 제가 어찌 견디겠습니까? 당신 얼굴을 저에게서 돌리지 마소서. 제 영혼이 물 없는 사막처럼 되지 않도록 당신의 위안을 저한테서 거두지 마십시오. 오, 주님. 당신 뜻을 이루면서 겸손하게 사는 길을 저에게 가르쳐주십시오. 당신 홀로 저를 옹글게 하시고, 제 영혼을 속속들이 들여다보십니다. 당신만이 저에게 한결같은 평화와 기쁨을 주실 수 있습니다.
❍ 화답
(회중)
주님,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나의 신음 소리를 들어주십시오. 나의 탄식 소리를 귀 담아 들어 주십시오. 나의 임금님,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시 5:1-2, 새번역)
❍ 사죄 선언
저마다 지은 죄 감당하기에 너무 어려울 때에,
오직 주님만이 그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시편 65:3, 새번역)
❏ 들음
[사순절 읽을 거리: <좁쌀 한 알> 中]
〈너나 나나 거지〉장일순이 최병하에게 말했다. "너나 나나 거지다." 최병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장일순도 물론 거지가 아니었고. 자신도 제재소를 경영하는 사장이었지 거지가 아니었다. 장일순이 뜨악해하는 최병하에게 물었다. "거지가 뭔가?" "거리에 깡통을 놓고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여 먹고사는 사람들이지요." 장일순이 받았다. "그렇지. 그런데 자네는 제재소라는 깡통을 놓고 앉아 있는 거지라네. 거지는 행인이 있어 먹고 살고, 자네는 물건을 사가는 손님이 있어 먹고사네. 서로 겉모양만 다를 뿐 속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장일순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누가 하느님인가?" 최병하는 얼른 답을 못했다. "거지에게는 행인이, 자네에게는 손님이, 고객이 하느님이라네. 그런 줄 알고 손님을 하느님처럼 잘 모시라고. 누가 자네에게 밥을 주고 입을 옷을 주는지 잘 보라고." 밥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 집에 밥 잡수시러 오시는 분들이 자네의 하느님이여. 그런 줄 알고 진짜 하느님이 오신 것처럼 요리를 해서 대접을 해야 혀. 장사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은 일절 할 필요 없어. 하느님처럼 섬기면 하느님들이 알아서 다 먹여주신다 이 말이야." 학교 선생님에게는 누가 하느님인가? 그렇다. 학생이다. 공무원에게는 누가 하느님인가? 지역 주민이다. 대통령에게는 국민이 하느님이고, 신부나 목사에게는 신도가 하느님이다.
〈수행〉
어떤 이가 골동품을 취급하다 잘못돼서 감옥살이를 하게 됐다. 장일순은 그 소식을 듣고 난초 한 장을 치고, 거기에 편지를 한 장 써서 보냈다. 편지 내용은 간단했다. "자네는 지금 수행하기 아주 좋은 기회를 얻었네. 부디 그 좋은 기회를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바라네." 동시에 그가 빨리 옥살이에서 풀려나도록 힘을 썼다. 알아보니 잘못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 닦기 좋은 곳이 세 군데 있다고 한다. 첫째는 선방이고, 둘째는 감옥이고, 셋째는 병원이라 한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아, 수행하라는가 보다'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다보는 게 좋다. 그것을 장일순은 '바닥을 기어서 천 리를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그만의 언어를 써서 표현했다. 납작 엎드려서 겨울을 나는 보리나 밀처럼 한 세월 자신의 허물을 닦고 가다 보면 언젠가는 봄날이 온다는 것이다. 겨울에 모가지를 들면 얼어 죽는다는 것이다.
〈자네가 바로 하느님이여〉
개신교 목사인 고진하는 그의 책 《나무 성자님과 누에 성자님》에서 장일순과 만나서 느낀 충격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삼십 대 초반을 막 넘어설 무렵, 나는 어느 기독교 출판사에 몸담고 있었다. 전두환 정권의 서슬이 시퍼럴 때였는데, 내가 편집하는 월간지가 예기치 못한 필화 사건에 휘말렸다. 나는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하고 몇 개월을 서울 변두리를 떠돌다가 살길이 막막하여 강원도 영월의 고향집으로 낙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 년을 떠돌며 지내던 어느 날, 나는 가까운 도시인 원주에서 친하게 지내던 한 선배를 만나러 갔다. 도무지 헤어날 수 없는 정신적 미궁 속을 헤매고 있던 나의 처지를 잘 아는 선배는, 자기가 정신적 스승으로 모시는 듯한 분에게로 나를 강권하다시피 데려갔다.
내가 살아온 얘기를 한참 듣고 나시더니, 그분은 그 번뜩이는 눈초리로 무거운 입을 떼시어 일갈하셨다. "이보게 젊은이, 하느님이 어디 따로 계신 줄 아나? 자네가 바로 하느님이야."
나직한 음성으로 장 선생께서 들려주신 이 한마디는, 그야말로 잔뜩 움츠려 있던 내게는 형언할 수 없는 놀라움이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내가 하느님이라니!
그날 나는 선생의 일갈을 통해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성스런 신의 뜨락에 겨우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새로이 종교에 입문을 한 셈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충격 속에, 그러나 놀라운 '보화'를 가슴에 간직한 채 고향집으로 돌아온 나는 내 인생의 새로운 전환을 맞이할 수 있었다. 막막하기만 하던 시야가 새롭게 열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나는 막막함의 까닭을 내가 처한 외적 현실에만 돌렸던 셈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바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 성경이 새롭게 읽혔다. 노자, 장자 등의 동양사상 속에서도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과 역사가 새롭게 읽혔다. 삶의 변두리로 나를 내친 서슬 퍼런 정치 세력에 대한 증오와 원망에서도 점차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들이 아니라면 내 삶에 이런 놀라운 전환이 가능했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 그들에 대한 고마움마저 갈무리하게 되었다.
금화가 말을 하고 금화가 사람값을 매기는 세태 속을 살며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질 때, 겉만 번지르르하고 존재의 내면은 가을걷이 끝난 텅 빈 들판의 짚가리 같은 군상들 속에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 존재의 탈바꿈을 통한 영적 부요를 추구해야 할 종교마저 그 종지를 망각하고 장사치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더욱이 내가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자꾸 바깥을 기웃거리며 막막함에 사로잡힐 때, 나는 지금도 선생의 생생한 육성을 다시 듣고 싶어 가끔씩 눈을 감곤 한다.
"젊은이, 자네가 바로 하느님이여!"
❏ 사귐
❍ 찬송
❍ 기도
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서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모두 돌려가며 이 잔을 마셔라.
이것은 죄를 사하여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마 26:26-28, 새번역)
❍ 공동식사
❍ 공동기도
(인도자) 주님, 저를 당신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회중)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주게 하소서.
(인도자) 오, 거룩하신 주인님, 저로 하여금
위로받으려 하기보다 위로하게 하시고
이해받으려 하기보다 이해하게 하시며
사랑받으려 하기보다 사랑하게 하소서.
(회중) 주어서 받고, 용서해서 용서받고,
스스로 죽어서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 공동축도
(인도자)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회중)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고후 13:12-13, 새번역)

❏ 보냄
예배가 마쳤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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